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종교적 소수자 (문단 편집) === 서구권 === * 동유럽의 [[동방 가톨릭]]의 일파인 "[[벨라루스 그리스 가톨릭]]"과 "[[루테니아 그리스 가톨릭 교회]]"[* [[카르파티아 산맥]] 일대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계 [[루신인]]들이 믿던 소수 종파] 러시아에서는 가톨릭 세력의 앞잡이라고 공격받으나, 폴란드나 헝가리에서도 제대로 된 가톨릭이 아니라며 심각한 차별을 당한다. 벨라루스 그리스 가톨릭 교회는 한 때는 [[예수회]]와 함께 벨라루스 르네상스를 주도할 정도로 세력이 컸으나 오늘날에는 신도가 7천여 명만 남을 정도로 철저히 몰락했다. 루테니아 그리스 가톨릭은 유럽에서는 몰락했지만 미국의 [[루신인]] 이민자 사회에서 나름 부흥에 성공하여 현재 40~60만명 정도의 신도를 자랑한다. * [[슬로바키아]] 그리스 가톨릭교회 * 북유럽과 동유럽 및 그리스의 [[신이교주의]] * 영국의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계 무슬림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 아대륙에서 이주해온 이민자 및 그 후손들으로 주로 요식업 계통에서 종사하며 의료계에서 종사하는 경우도 많다. 런던 시장인 [[사디크 칸]] 역시 파키스탄계 무슬림이지만 이슬람 근본주의로 의심받을 것을 우려해 세간의 시선을 의식해서 예배에는 참석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민자 2,3세대부터는 평균보다 높은 교육 수준을 보여주는 등 어떻게 보면 나름 성공한 소수민족 집단처럼 보이지만, 영국 백인들 사이에서 이들에 대한 이미지는 별로 좋지 않다. 공과 사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기존의 영국인들과 다르게 혈연, 지연을 중시하기 때문인데, 이게 좋게 말하면 정이 많은 거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부정부패에 둔감한 것이다. [[로더럼 아동 성착취 사건]] 역시 대가족 중심의 파키스탄인 사회에서 가해자들이 지인의 아들이나 친척이라는 이유로 목격자들이 신고를 하지 않은 바람에 장기간 지속되었던 것으로,[* 극우 커뮤니티에서 이 사건을 두고 파키스탄인 전체를 싸잡아서 증오발언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 당시 지역 비하 논란과 비슷한 오류이다. 장기간에 걸친 집단 성폭행은 [[닫힌 사회]]에서 흔히 발생하는 문제이며, 증오 발언으로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는 결국 [[브렉시트]]의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 프랑스의 [[북아프리카]] 아랍/이마지겐 무슬림 프랑스에 대규모 무슬림 인구 유입은 [[알제리 전쟁]] 이후 프랑스 편에 가담했었던 아르키(Harki)들이 알제리 독립운동 세력의 보복을 피해 프랑스로 대거 망명한 것이 그 시초이다. 프랑스는 알제리와 모로코, 튀니지를 식민지배할 때 식민지인 교육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문제는 알제리 전쟁 이후 프랑스 본토로 도망온 아르키 대부분이 글을 읽고 쓸 줄 몰라서 상당수가 구걸이나 절도로 먹고 살 수 밖에 없었다는 점. * 불가리아와 그리스의 [[포마크인]] 이슬람으로 개종한 슬라브계 불가리아인의 후손이다. 참고로 불가리아를 포함해 발칸 반도의 기독교 국가들은 자신들이 서유럽보다 못사는 이유가 전부 오스만 제국 탓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오스만 지배 시기 이슬람으로 개종한 무슬림 소수자들에게 거리낌 없이 잔인한 박해를 가하기도 한다. *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의 [[보슈냐크인]] [[오스만 제국]] 시대에 [[보고밀파]]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한 남슬라브인의 후손이다.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보스니아인 모두 같은 [[세르보크로아트어]]를 사용하는데다, 오히려 오스만 제국 시절에는 남슬라브인 무슬림과 기독교인들이 서로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19세기 말 민족주의 부흥 이후 보슈냐크인들이 자신들을 별개의 민족으로 여기고, 이에 세르비아인들이 이들을 자신들의 땅을 대신 차지한 강탈자로 간주하기 시작하면서 상호 갈등이 심화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보스니아 내전]] 문서 참조 * 유럽, 아메리카에서의 불교 수가 꽤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소수자 집계에 누락되는 경우가 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마따나 여러 가지 논란이 되고 있는 무슬림 이민자들에 비해서 차별과 편견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부분도 있다. * 미국의 [[히스패닉]] 밀집 거주 지역의 [[시크교]] 신도와 무슬림 미국 흑인들이 이슬람에 우호적인 것과 반대급부로 히스패닉들은 미국 내 무슬림 집단괴롭힘에 제일 먼저 앞장서는 편이다. [* 어떻게 보면 중세 이베리어 반도서의 이슬람과 기독교도간의 전쟁의 연장선으로 볼 수도 있다.]그러나 미국 언론에서 정치적 이유로[* 차별 문제를 민감하게 다루는 미국 민주당이 히스패닉의 든든한 우군인 관계로 미국 내 진보 언론에서 히스패닉의 소수자 차별 문제를 다루면 '''팀킬'''이 된다.] 히스패닉과 무슬림 사이가 얼마나 나쁜지를 보도하지 않기 때문에, 미국 외에서는 [[일한 오마르]][* 참고로 이분은 성소수자의 인권 보장을 주장하고 사형제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하여, 해외의 주류 이슬람계로부터 많은 반발을 들었던, 한마디로 예외적인 경우이다.] 같은 경우만 보고 히스패닉과 무슬림들을 상호 우호적인 관계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이로 인해 집값이 싸다고 히스패닉 밀집 지역에 정착한 무슬림 이민자들이 헬게이트를 경험하는 사례가 속출하기도 했다. * [[사탄교]] 미국의 사탄교는 실제로 사탄을 숭배한다기보다는 공개적으로 무신론을 강조한다는 개념에 가까우며, 북유럽의 사탄교는 [[신이교주의]]와 연계되어 있다. 진지하게 믿는 사람도 있는 모양인지(...) 한 번은 칠레에서 한 [[Deicide]] 팬이 공개적으로 가톨릭 신부를 살인한 사건이 벌어져 큰 논란이 되었다. * [[폴란드]], [[핀란드]]의 [[정교회]] 신도 과거에는 외세 압제를 상징하는 종교로 해당 국가들 내에서 이미지가 매우 좋지 않았으나, 오늘날에는 이미지 개선이 이루어져 제 2의 종교 위치에 있다. 다만 러시아와 국경이 직접 닿아 있는 상태에서 러시아인 인구가 상당 비율 거주하는 [[발트3국]] 내 발트인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인식이 매우 부정적이다. * [[립카 타타르]] [[리투아니아 대공국]]에 귀순한 [[킵차크 칸국]] 출신 무슬림 타타르인들의 후손이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벨라루스]]에 걸쳐 거주하며 600여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현지화되어 립카 타타르인 후손 상당수가 [[가톨릭]]을 믿고 그냥 조상 중에 타타르인이 있었다고 아는 수준이다. 물론 무슬림인 폴란드/리투아니아 타타르인도 엄연히 존재하지만, 모어로 [[폴란드어]] 등 현지어를 사용하며 외양 또한 그냥 현지인과 다르지 않다. 이들의 성씨는 ~스키로 대표적인 폴란드어 성씨들이다. 여담으로 미국 최초의 모스크는 1927년 립카 타타르인 이민자들이 뉴욕시 [[브루클린]]에 건설한 모스크라고 한다. 해당 모스크는 립카 타타르 출신 이민자 상당수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거나 더 이상 이슬람을 믿지 않으면서 현재는 종교 시설보다는 역사 유산으로 관리되고 있다. * [[체코]]의 [[후스파]] [[종교개혁]] 시기 [[보헤미아]] 일대에서 [[얀 후스]]의 가르침을 추종하던 개신교인들로, [[30년 전쟁]] 과정에서 보헤미아 지역이 초토화되고 인구가 격감하는 과정에서 오스트리아의 탄압까지 받아 교세가 크게 위축되었다. 개신교를 믿던 [[체코인]]들은 낮에는 [[가톨릭]] 미사를 보고 밤에 몰래 개신교 예배를 방식으로 신앙을 유지하다 결국 상당수가 개신교를 포기하고 명목상이나마 가톨릭을 믿게 되었는데, 이는 오늘날 체코인들이 유럽 기준으로도 세속주의 성향이 강해지는 배경이 되었다. 18세기에 들어서야 후스파에 대한 박해가 멈추었지만 이미 신도 대부분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거나 배교하고 체코에는 소수만 남은 상황이었다. 여담으로 19세기 이후 체코 민족주의가 부흥하면서 얀 후스와 [[얀 지슈카]]는 종교를 떠나 [[민족주의]]적으로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 * [[퀘이커(종교)|퀘이커 교도]] 영국에서 이단시되던 개신교 종파였으며 신도 상당수가 미국으로 이주하여 [[펜실베이니아 주]]를 개척했다. 오늘날에는 신도가 수십만여 명 정도 남아있으며, 현재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신도 인구가 영국, 미국 내 신도보다 약간 더 많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